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추석의 차량 이동은 가히 지옥과 같았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귀성, 귀경길 차량이 몰리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2시간은 족히 걸렸다. 에어컨은 사치였던 시절이라 운전자를 제외하곤 차량에서 내려 걷는 사람도 있었고 도로변에 볼일을 보는 사람은 흔했다.
운전 난이도도 헬에 가까웠는데 하이패스가 없었던 과거에는 톨게이트에서 사람이 직접 돈을 받았고 톨게이트 통과 시간도 길었다. 그렇다 보니 통과 시간이 느린 톨게이트 수는 많이 필요했고 차량이 쭉쭉 빠지는 도로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이러한 구조 때문에 도로가 막혀 차들이 빠지지 못하게 되면 지옥의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저속 운행 중 끼어들기가 불가능했던 사람은 도로에서 추석을 보냈다는 설화도 있다.
그렇다고 기차표 예매는 쉬웠나? 전혀 아니다. 당시는 온라인이나 모바일 예약이 없어 직접 예약을 해야 했고 당연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KTX, SRT 같은 고속 열차도 적었고 기본적인 운행수도 적어 경쟁이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이때 예약을 못하면 암표를 구해야 했고 그마저도 없다면 마땅한 도리가 없었다.
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절만 되면 차편부터 물어보는 어른들을 보며 뭘 저렇게 걱정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남은 표도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며 굳이 원하는 시간대 표가 없으면 조금 빨리 또는 조금 늦은 시간대 표를 구해서 내려갈 수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표를 구하지 못하면 매표소에서 죽치고 있어야 했었다.
지금이야 우리의 명절 문화를 보고 조금 와전됐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과거에는 최대한 많이 모이고, 최대한 많이 차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어느 집보다 절차를 복잡하게 하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올리는 집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명절은 큰집에서 보내는 집이 많지만 과거에는 무조건 큰집에서 모이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 당시 큰집은 당연 시골이 많았고 어른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할 게 없었다. 몇 없는 가게도 명절이라 문을 닫으면 어쩔 수 없이 민속놀이를 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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