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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이야기

과거 대규모 호우 피해로 살펴보는 호우 극복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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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한국수자원 공사(재산피해는 발생연도 기준 피해액)]

 

 

1959년 태풍 사라

태풍 사라는 1959년 9월 15일 발생하여 빠르게 이동, 한반도에는 9월 17에서 9월 18일까지 영향을 미친 태풍입니다. 비교적 빠르게 지나갔지만 한반도 관측 이래 3번째로 큰 태풍으로 짧은 시간 많은 호우를 동반하여 849명의 사망자와 662억원의 재산피해를 발생시킨 태풍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하수 시스템 및 예보 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해 자연재해로 발생한 인명피해 중에는 최악의 참사였습니다.

 

 

 

1972년 안양, 시흥 지구 수해

1972년 8월 17일에서 8월 20일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특히 수도권에 많은 비가 내렸고 서울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550명이었으며, 70년대 강남 개발과 맞물리면서 서울 치수사업에 대한 중요성이 조명되었던 참사였습니다.

 

 

1984년 9월 대홍수

1984년 9월 1일부터 9월 4일까지 전국적인 호우로 발생한 대홍수 사건입니다. 당시 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서쪽에 많은 지역이 침수 피해를 본 상황이었으며, 게다가 소양강댐마저 한계 수위에 다다르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는데요. 소양강댐이 붕괴될 경우 물은 물론이고 많은 토사물도 함께 도시를 덮칠 수 있어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되었습니다. 다행히 소양강댐은 한계 수위에 21cm를 남겨두고 수위를 낮추는데 성공해 더 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189명의 사망자와 1,643억원 재산피해를 발생시킨 수해로 당시 치수관리 실패와 오보 등으로 피해가 급증했다며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후 국가에서는 댐을 정비하고 충주댐을 추가 건설하는 등 보완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1987년 태풍셀마, 중부지방 호우

1987년 7월 15일~16일 발생한 태풍 셀마와 이후에 뒤따른 호우(7월 21일~23일)로 20만명의 이재민과 512명의 사망자 7,208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참사입니다. 안타깝게도 피해가 이렇게 커진 원인이 태풍의 진로를 잘못 판단한 기상청의 오보로 많은 피해자들은 태풍이 온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진로의 이동과 세력 확장으로 당초 예상보다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거기에 장마 기간 발생한 태풍으로 이후 바로 집중호우가 뒤따르면서 아주 큰 피해가 발생한 참사였습니다.

 

 

2002년 태풍루사

한반도 최악의 태풍이라 불리는 루사는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여 한반도에 2002년 8월 30일 상륙 9월 1일까지 영향을 미친 태풍입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액을 기록한 루사는 246명의 사망자와 5조 1,479억원의 재산피해를 발생시켰는데, 강원도 일대에는 일최대강우량으로 870.0mm가 내렸다고 할 정도로 그 기세가 매서웠습니다. 

한때 이 태풍으로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밈이 유행하기도 하였는데요. 다행히 이 일로 태풍의 경각심이 더해져 국민과 국가가 모두 태풍에 대한 대비를 더욱 철저히 한 덕에 이후 발생한 태풍 및 호우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고 합니다.

 



태풍과 호우는 국민들의 경각심

국가의 치수사업에 대한 관심과

철저한 수위 관리

정확하고 신속한 예보가

모두 고루 갖춰져야

극복할 수 있는 재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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